왕십리홍

210523 내 세상이 좁은 탓일 수도 있다.

홍니버스 2021. 5. 23.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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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쯤 언니와 엄마를 마중 나가고는 했다.

엄마는 식당에서 서빙 일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매일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할 수 있었다. 종일 엄마를 기다리던 언니와 나는 밤 10시쯤 되면 습관적으로 지하철역으로 엄마를 찾아 마중 나가고는 했다. 그러면 엄마는 혼자 오는 것보다 안전하게 오실 수 있고, 우리는 10분이라도 먼저 엄마를 만나는 게 좋았다. 밤에 언니와 둘이 재잘재잘 얘기하면서 지하철역으로 가서 역 앞에서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리곤 했다. 가끔씩 엄마가 잔업을 하셔서 늦는 날에는, 언니와 나는 지하철 역 계단에 앉아 출구만 바라보며 엄마를 기다리곤 했다. 엄마를 놓치는 일은 없었다. 아무리 멀리 계셔도, 사람들 틈에 있어도 우리는 꼭 엄마를 찾아냈다. 엄마 얼굴이 보이면 곧장 엄마! 하고 큰 소리를 내며 교통카드를 찍는 곳에 한달음에 달려가곤 했었다. 

한 번은, 왜였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엄마가 일하던 명동 근처로 언니와 엄마를 마중 나간 적이 있었다. 웬일로 그렇게 멀리까지 갔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어두운 종로 거리, 가게들도 문 닫은 밤 10시가 넘은 때. 나는 엄청 커다란 애니메이션 포스터를 보고 울렁거림을 느꼈다. 닫은 극장 앞에 내 키보다 커다란 사이즈로 붙어 있었던 포스터. 하늘색 배경과 내 또래 여자아이 그림을 보니 이 세상 밖 다른 곳이 있을 것 같아, 가보고 싶다 라는 상상을 했던 것 같다. 

나를 울럼거리게 했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시간이 오래 흐른 후, 지브리 스튜디오라는 유명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아마 대학교를 갈 때쯤이었다. 그리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이 작품도 알게 되었고, 처음 포스터를 보고 거의 10년이 지난 후에야 이 영화를 봤던 것 같다. 그 이후로도 다시, 또다시 계속해서 보고, 대만 지우펀에도 갔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에서는 마법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이 제작사 애니메이션이야말로 마법이 깃들어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섬세한 동화 같은데, 공감되는 부분도 많고 보고 나서 배우는 부분이 있어서 참 좋다. 요즘도 시간이 날 때는 못 봤던 작품들을 보고 있다. 

최근에 봤던 작품은 귀를 기울이면 (1995), 바다가 들린다(1993) 였다.

특히, 바다가 들린다를 마지막까지 보고는, 내가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자세한 줄거리는 스포가 될 수 있으니까 생략하고, 마찰이 있던 두 캐릭터 중 한 캐릭터가 마지막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 어릴 때 반 짝꿍이 싫은 아이면 학교도 가기 싫고 온통 그 생각만 하게 된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학원도 가고, 다른 세상을 겪다 보면 학교에 있는 싫은 사람 한두 명 정도는 신경 쓰지 않게 된다. 이전에 내 세계는 학교뿐이었고 거기에 싫은 사람이 있는 게 너무 크게 느껴졌지만, 내 세상이 학교 밖으로 확장되고 나면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싫은 사람이 계속해서 거슬리는 이유는 내 세계가 좁아서, 그 좁은 세상에만 너무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적이 있다. 예전에 회사에서 계속해서 거슬리는 한 명이 있었다. 말투도 너무 가볍다고 느껴졌고, 일에서 실수를 반복해서 하는 것도 맘에 들지 않았었다. 좀체 정 주기 힘든 사람이었다. 어느샌가 내 일이 바빠져서 그 사람을 싫어할 겨를도 없어졌는데, 이후 얘기를 하다 보니 재미있고 장점도 많은 사람이었다. 그 후로도 우린 잘 지냈다. 

지금 내가 싫은 사람이 있다면, 내 세상이 그곳에 너무 한정되어 있고 좁다는 것은 아닐까? 계속해서 나의 세계를 확장시켜야 한다는 신호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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