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퇴사하고 독일/국내파 문과생 독일 석사 유학

[국내파 직장인 독일 석사 유학] 0. 독일유학 결심 이유 (1)

홍니버스 2021. 4. 24.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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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작은 해외생활에 대한 로망 때문이었다.

나는 글을 쓰는 2021년 한국 나이로 31살, 오늘날까지 여행을 제외하고는 한국을 벗어나서 2주 이상 장기 체류를 해 본 적이 없는 토종 국내파 이다. 자란 환경이 일반적이지 않아서 그랬던 건지, 내 성격이 그렇게 타고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항상 한국 문화에 깊숙이 녹아들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다고 느꼈다. 기본적으로 우리의 문화는 집단 중심의 문화이고, 집단을 위해서 개인의 불편함은 감내하는 것들이 미덕이라고 여겨졌다. 최근에는 바꾸고 있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만 보아도 회사를 다니며 개인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으로 여겨지지 않았던가? 그런 문화 속에서 나는 한국인이지만 이방인 같았다. 어렸을 때부터 자기주장이 정말 강했다. 특이한 건, 이성적으로 설명이 되고 납득이 되면 또 알겠다고 금방 수긍을 했다는 것이다. '그냥 다 원래 그런 거야, 가만히 좀 있어.' 이런 말을 들을 때 나는 항상 반발심이 생겼다. '원래 그런 게 어딨어요? 당연한 게 뭐예요? 왜 불편한 걸 참아야 해요?' 이런 식의 말대꾸를 하는 어린 녀석을 어른들은 '버르장머리 없다' 고 하기도 했고 '크게 되겠다' 하시는 분도 있었다. 또래 친구들 사이에선 '쟤 왜 저래?' 하는 시선을 받았다. 이 곳에서 나고 자랐는데도 불구하고 그 문화에 좀체 흡수되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내가, 가끔은 정말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 고민했다. 

그래서 궁금했다. 혹시, 이 세상에는 내게 더 잘 맞는 곳이 있지 않을까? 누구에게나 더 잘 맞는 문화나 환경이 다를 텐데, 이게 꼭 태어난 곳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세상을 관찰하고 탐구하고 싶었다. 고등학교 대 커다란 전지 크기의 세계 지도를 사서 책상 앞에 붙여 두고, 이 곳엔 어떤 사람들이 살까, 어떤 삶이 있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는 했다.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 한창 유럽 배낭여행과 교환학생이 붐이었다. 1년씩 다른 나라에서 지내고 오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들이 전해주는 이야기가 신기했다. 하지만 체류비와 학비를 들었을 때 나는 지금 갈 수 없다 하고 단박에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당시 1학기 체류하는데 900만 원 정도를 잡았었는데, 나는 학비를 학자금 대출로 충당하며 최저시급 4000원 대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 내게 6개월 만에 1천만 원 가가이 되는 돈을 쓴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신 아르바이트 비를 모아 졸업 전에 해외여행을 가보기로 했다. 열심히 일해 모은 300만 원. 200만 원을 쓰며 터키에  2주 동안 졸업 직전 여행을 다녀왔다. 터키 여행 은 정말 내 인생에 큰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낯선 곳에서 인터넷도 없이 하루 2만보를 걸으며, 이스탄불부터 서쪽을 따라 남부 페티예 와 안탈리아, 그리고 북쪽 트라브존, 사프란볼루를 지나 이스탄불로 돌아왔다. 그때까지 나의 세계엔 이런 세상은 존재하지 않았는데. 내가 사는 세계가 180도 바뀌어 버렸고, 세상을 보는 내 시야도 확장됐다. 

첫 해외 여행 가던 길, 중국 우루무치 에서 이스탄불행 경유 비행기를 기다리며. 

 

그때부터 악착같이 돈을 모아 해외를 다녔다. 홍콩, 일본, 태국, 대만, 우즈베키스탄, 미국, 독일, 오스트리아 등. 아시아, 미주, 유럽을 갈 때마다 그제야 제대로 숨 쉴 수 있는 기분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늘 부딪히던 성격이었다. 생긴 것도 한국인이고, 자란 곳도 한국이면, 이런 건 눈치껏 해야지? 하는 것들을 나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에 대해 듣는 핀잔 속에서 나는 이상한 이방인 같은 한국인이었다. 하지만 해외에 있을 때 난 그냥 평범한 이방인이었다. 그래, 난 그냥 보자마자 이방인이지. 보다시피 난 그저 다른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면 그만인 곳들이었다. 

내가 어디까지 나의 세계를 확장할 수 있는지 한계가 궁금했다. 태어난 곳보다 훨씬 더 잘 맞는 곳이 있는지 궁금하고, 아니면 그래도 역시 태어난 내 나라, 한국이 최고다. 하고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될 지도 궁금하다. 내가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이 질문들의 답을 찾고 싶고, 그래서 해외에 장기체류를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기 시작했다. 

첫 플랜은 워킹홀리데이였다. 워킹홀리데이는 비자도 금방 나오고, 일을 하면서 해외에 1년 이상 체류할 수 있다니! 게다가 영국의 YMS는 2년까지 체류할 수 있다. 워킹홀리데이로 첫 단추를 꿰고, 이후 잘 맞으면 현지에서 더 길게 있을 방법을 찾거나, 한국에 돌아오면 되겠다고 간단하게 생각을 했다. 그전에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남은 학자금 대출을 갚고, 워홀 초기 자금도 모으고, 영어공부도 하고, 경력도 쌓을 겸 3년 정도 더 있자고 생각을 했다. 

2016년의 첫 계획은, 2020년~21년 사이 워킹홀리데이 (국가 미정) / 그전까지 한국에서 회사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2018년 말부터 워홀 신청할 나라를 찾았었다. 워홀 비자는 국가마다 그 비자를 갖고 근무할 수 있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을 비교해서 추린 나라가 (1) 영국 (2) 아일랜드 (3) 독일 (4) 호주 정도였다. 캐나다는 워낙 경쟁률이 높아서, 싱가포르는 싱가포르식 영어를 들어보고 너무 놀라서, 후순위로 두고 있었다. 위의 4개 국가에선 워홀 비자받기도 비교적 수월하고, 장기적으로 워홀 이후 사는 것까지 고려했을 때도 관심이 가고, 영어로 생활이 가능하고, IT 업계에서 일한 경력을 살려 워홀 사무직 일자리를 도전해봄직 하다고 생각했다. 

2019년 에는 비자 신청 시기에 맞춰 신청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초기 자금과 한국을 돌아오는 경우를 생각했을 때 경력 측면에서도, 1년 정도는 한국에서 더 일하는 편이 낫겠다고 계획을 수정하게 되었다. 그 결과 수정된 계획은 2021년 워킹홀리데이 (영국/아일랜드/독일/호주) 였다. 그리고 이때 독일인 남자친구 A를 만났다.

2020년 A와 나는 어떻게 하면 같이 지낼 수 있을지 계획을 짜고 있었고 (프로계획러) , 독일로 워홀을 오기로 했다. 원래 우리는 내가 영국이나 다른 나라로 가고 롱디를 하게 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내가 A와 더 있고 싶어서 독일로 오겠다고 했다. A를 만나기 전 나는 독일로 워홀을 간다면, 베를린으로 가려고 생각했었다. 영어도 많이 사용하고, IT 회사도 많고, 베를린 특유의 자유분방하고 퇴폐적인 느낌도 좋았다. 근데 A가 더 좋았다. 그래서 2020년 1차적으로 수정한 계획은 2021년 독일 워킹홀리데이를 가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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