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몇 가지쯤 그래도 타고난 소질이 있는 분야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가 천재 수준일 수도 있고, 그저 본인이 할 수 있는 많은 것 중 다른 것보다 그나마 조금 더 낫다거나, 덜 지루하게 느끼는 정도로 다를 수는 있지만. 내게 있어서는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가 그런 분야였다.
특히 내게 글쓰기는 항상 큰 즐거움이자 자랑거리였다. 말하기를 시작한 건 또래보다 빨랐고, 학교에서 주관하는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놓친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에는 시 단위 이상 논술대회에 학교 대표로 출품했고, 대학교 갈 때도 논술 우수자였고, 매일 아침 출근 전에는 짧은 글이라도 쓰는 게 습관이었다. 글감은 무작위였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 소재가 되어서 느낌 감상을 쓰기도 하고, 이번주, 올해, 혹은 그 이후 장기 계획을 작성할 때도 왜 하고 싶은지 글로 쓰며 나 자신을 설득했다. 직장을 다닐 때, 영업으로서 고객사에 수많은 메일을 쓰면서도, 그 일도 즐겁게 느낄 정도였다. 어떻게 하면 이 정보를 더 간결하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리고 석사를 준비하며 블로그를 개설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독일에서 석사를 시작하고 나서 글쓰기를 멈췄다. 블로그 글쓰기는 물론, 다이어리에 글을 쓰며 스스로와 토론하던 시간마저 사라져 버렸다. 펜을 들어 보았지만 10분동안 멍하니 단어를 썼다 지우며 떠다니는 생각에만 잠겼다. 자의로 글쓰기를 멈춘 게 아니다. 글쓰기라는 즐거움이 나를 떠나버린 것 같다. 그 이유를 요즘엔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계속 아무것도 쓰지 않으면, 그게 영영 돌아올 것 같지 않아서, 지금 있는 그대로 글을 못쓰는 요즘에 대해서 글을 써보고 있다.
원인은 두가지 정도로 추측하고 있는데, 어느 하나 확실한 원인으로는 안 보여서 답답하다. 첫 번째는, 석사 첫 학기 개강이다. 지금 말고 한 달 이상 글쓰기를 멈춘 때는 학사 첫 학기뿐이었다. 그때는 노는 것, 공부하는 것, 모든 새로운 것들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글에 집중할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첫 1년을 보내고, 글과 계획 없이 보낸 시간에 대한 후회를 느껴 2학년 때부터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다. 10월보다는 조금 적응됐다고 느끼는데, 나는 아직도 많은 에너지를 적응에 쓰고 있는 걸까? 두 번째는, 영어 사용이다. 독일에 오고 나서 영어로만 생활을 하다 보니, 가끔 한국어로 대화를 할 때 느리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서, 전에는 적재적소에 사용하던 단어들이 빠르게 떠오르지 않고 1~2초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카카오톡으로 거의 메시지 위주 소통을 하다 보니, 한국어로 마지막으로 대화를 해본건 2주도 넘은 것 같다. 반면 공부, 대화, 영상 시청이나 독서 같은 콘텐츠 소비 전부 영어를 매개로 하고 있다. 그래서 글쓸 때도 글감이나 단어가 한국어로 곧장 떠오르지 않는 걸까 하고 추측해봤다.
지금의 방황이 일시적인 것이었으면 좋겠다. 글쓰기에 집중하던 이른 아침의 시간들이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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