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홍

20230503 아직은 나를 힘들게 하는, 독일 생활 단점 -사람편-

홍니버스 2023. 5. 4.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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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에서 회복을 해보자고 근교로 주말에 여행을 갔다 왔는데 돌아온 다음날에 회사에서 있었던 몇 가지 일 때문에 충전해 온 에너지를 다 써버린 것 같았다. 독일에 온 지 만 2년이 꽉 찼고, 3년 차에 들어가는데도 아직도 적응 못한 독일 생활의 단점들이 있다. 독일 생활을 더 오래 하신 분들은 적응이 되신 건지, 단련이 되신 건지 좀 더 초연해 보이시는데 나는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악 또!!! 하고 화들짝 짜증을 내게 된다. 처음에는 이게 뭐지? 기분 나빠해야 하는 거야? 문화차이야 뭐야? 헷갈렸다면, 이제는 문화차이에서 기인했든 아니든 그냥 일어나면 성질이 나는 일들이 되었다. 

독일에 오기까지 직장을 다니면서 준비 해 온 과정도 자랑스럽고, 아직 큰 탈없이 독일에서 삶을 살고 있는 스스로를 대견하다며, 독일에서의 내 삶을 그래도 퍽 좋아한다만. 그렇다고 모든 삶의 부분이 매끄럽고, 성공적이고, 프로페셔널하게 흘러가진 않는다. 특히 30대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온 사람으로서 느끼는 몇 가지 단점이 있는데 이전에 한번 쓴 글과 통합해서 업데이트해보고자 한다.

2022.08.31 - [왕십리홍] - 20220831 독일 석사 유학 나이 - 30대 초반에 시작한 이야기


생활 상의 단점(e.g. 일요일 수퍼 닫음) 말고 사람들에게 오는 피로감을 써보고자 하는데, 모든 내용은 개인적 경험에 기반한 주관적 견해이며, 모든 독일인이 이렇다 저렇다 일반화하고 싶지 않습니다. 직접 겪은 것 중 부정적인 개인적 경험들의 공통된 몇 가지 패턴과 그게 대한 피로에 대한 글입니다. 개인 일기장에 쓸까 하다가, 독일행을 준비하시는 누군가에게는 생생한 생활 후기가 될 수 있고, 비슷한 경험을 하시는 독일 거주자 분들에게는 혼자 겪는 일이 아니라 저도 겪고 있는 일이라는 작은 위로이자 공감 한 조각을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써봅니다. Don't get me (too) wrong.  

독일 생활 단점 1. 사람, 특히 독일인 친구, 사귀기가 힘들다.

30대 직장인이라면 한국에서도 친구 새로 사귀기는 어려운데요? 라고 반문할 수 있는데, 나는 그 난이도가 독일에서 더 높다고 느낀다. 이전 글에서 썼던 것처럼, 사회에서의 포지션이 일단 애매해진다. 30대 초중반 나이면 독일 기업에서는 학석사 후 Senior 레벨 이상이고 빠르면 박사 후 교수가 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석사 중인 파트타이머이다. 석사 과정을 함께 공부하는 독일 학생들은 보통 20대 중반. 이곳도 저곳도 내가 속해서 관심사를 주고받는 데 한계가 너무 뚜렷한 것이다. 두 번째로, 독일인들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오래된 친구들과 그룹을 형성해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 주변 독일인을 관찰했을 때는 그들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 보이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취미 모임이 활성화된 것처럼, 독일도 취미 모임이 굉장히 활성화되어서 거기선 친구들은 더 사귈 수 있긴 하다고 들었다. 다만, 그 경우는 활동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취미 (e.g. 축구, 농구 등)를 한다거나, 대화 기반의 취미라면 독일어가 능숙해야 할 것 같다. 독일인 중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들의 모국어를 구사해서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어들 수 있는 것과 그들이 일부러 영어로 언어를 바꾸면서 대화를 해야 하는 건 다르다. 또, 친구들과 이미 독일어로 대화하는 게 익숙한 독일인 그룹에 나 혼자 외국인인 경우 아무리 그들이 영어를 잘해도 갑자기 친구들과 영어로 대화하는 건 어색한 것 같다. 또한, 대화에도 문화적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서, 한국에서는 감정이나 경험 기반의 대화가 더 활발하다면, 독일에서는 사실이나 토론스러운 대화가 더 많은 것 같다. 대화 맥이 뚝뚝 끊기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멋쩍어하다가 Bis dann! 하게 되는 것이다. 

애매한 연령과 사회적 포지션, 독일인의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데에 대한 관심의 결여, 나의 독일어 능력의 한계, 대화의 문화적 차이로 독일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란 쉽지 않다. 

다만, 비슷한 처지의 유학생 친구들과는 깊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특히 비슷한 때에 독일로 와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정말 깊게 공감할 수 있다. 가끔 가뭄에 콩나듯 드물게 서로 노력해서 친구가 되고자 하는 독일인 친구도 찾긴 했다. 쓰고 보니 처음엔 힘들었지만 이 부분은 어찌어찌해내고 있는 듯. 

독일 생활 단점 2. 개인주의 & 이중잣대

나는 한국인 치고는 꽤나 개인적인 편이다. 누구한테 뭐라고 하기도 싫고, 듣기도 싫어서, 안주고 안 받겠다는 주의이다. 굳이 한국 vs 독일의 개인주의 성향을 비교하면, 절대적으로 독일에서 더 편하게 느낀다. 하지만 여전히 이건 좀 너무하지 않니? 스러워서 얼굴을 찌푸리는 순간들이 있다. 소리에 민감한 나에겐 주로 소음 관련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서, 개인주의이기 때문에 독일 지하철에서는 큰 소리를 내고 소리를 지르거나 노래를 (중학생들 떼창 하는 것도 봤다.) 불러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우리 이웃은 아이들은 맘껏- 뛰놀도록 해서 아래층인 우리 집에서 몇 살 정도의 몇 명의 아이가 있는지 다 파악 가능할 정도였다. 독일인이 조용하다 Ruhezeit라는 시간이 법적으로 지켜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내가 경험한 독일은 아니었다. 두 층 위에 사는 젊은 커플은 분기 한번 꼴로 새벽 넘어서까지 파티를 하는데 우리 집까지 그 소리가 다 들린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그 개인주의적인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줄 거라는 생각을 안 하고 행동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한 번은 이웃집에서 자정까지 소리를 지르고 술을 마셔서, 파자마를 입고 가서 조용히 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은 독일인 동료들이 별일 없었냐며 깜짝 놀랐다. Ruhezeit인데 조용히 해달라는 게 당연한 요구지, 왜? 하고 반문했더니, 보통 그러면 내 집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왜 못하냐면서 이웃 간에 싸움이 난다는 것이다. 아니, 그럼 내 집에서는 내가 자고 싶은 때 왜 못 자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라는 것이 남도 남이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배려를 해야 한다는 전제가 상실되면 개인주의가 아니라 이기주의다. 그 사이 경계가 모호해서,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독일 생활 단점 3. 직설적인 커뮤니케이션 & 이중잣대

보통 독일인은 직설적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라는 이야기가 많다. 나는 조금 다른 면에서 이 직설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안 좋아하는데, 그건 바로 내가 이것까지 말해줘야하니? 싶은 것이다. 그 말인즉슨, 위에 개인주의와 같은 맥락으로 본인의 판단대로 남을 배려하지 않고 행동하는 경우들을 종종 봤다. 아니면 은근슬쩍 얼버무린다거나. 직접 겪은 예로는, 팀원 인원이 초과되어서 한 명을 빼야 하는 상황에서 나의 동의 없이 다른 팀원이 내 이름을 교수님에게 말했다. 그 상황을 모두 본 교수는 나에게 자, 네가 이 팀을 나가야 한다는 데에 동의하지?라고 묻는데, 어처구니가 없었다. 뭐 하냐 너네? 직설적으로 저한테 지금 그 선택지밖에 안 주시고 계시잖아요? 제가 다른 선택 할 수 있습니까? 라고 반문하니 멋쩍게 웃던 교수, 팀과제 ppt 슬라이드 수정하자고 만나자더니 노트북 안 들고 오는 팀원들, 동의 없이 회사 책상 다른 팀원에게 할당해 주는 매니저, 본인 잘못인데 은근슬쩍 저번에 네가 말했던 거 맞지? 라며 덤터기 씌우는 팀원까지. 아니라고 강력하게 말 안 하면 그야말로 치이고 뺏기는 상황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 주변 독일인 가족 및 친구는 독일에서는 본인이 원하는 거를 직설적으로 이야기해서 얻어내야 해!라고 했는데, 얻어내는 거는 둘째치고 본인 권리를 안 뺏기려면 싸워야 하는 상황이다. 직설적인 이야기를 듣는 것에는 별 감흥이 없는 사람인데, 이렇게 하나하나 내가 안 했다, 그거 해달라, 저거 해라, 정말 기본 적인 것까지 직설적으로 말해야 하는 피로감이 크다. 

여기에 이중잣대가 또 들어간 이유는, 이런 요구를 직설적으로 해야하지만 너무 직설적으로 하면 네가 뭔데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냐, 가르친다면서 기분 나빠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성 들여 직설적이지만 권유인 것처럼 Would you~? 하면서 부탁해야 하는 것이다. 오, 화병

독일 생활 단점 4. 숨겨진 거만함 

2차 세계 대전 이후 전범국인 독일은 반성하고 있고, 인종차별이나 우월성과 같은 것은 터부시 된다고 들었었다. 분명히 이걸 대놓고 얘기하면 겸손하라며 비판받을 수 있겠지만, 내가 부정적인 경험을 하게 한 몇몇 독일인들은 독일이 분명히 다른 나라보다 낫다라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 예를 들어서, 질문할 때 '한국은 이런 것 없지?'라든지 공영방송 프로그램에서 타국가에 방문하는 다큐멘터리나 타국가 사람은 인터뷰할 때 독일 기준으로 판단하고 '여기는 왜 그렇게 하죠?'라는 식의 거진 무례한 질문을 하는 것이다. 내가 직접 들었던 것 중 사례로는 동양인들은 왜 간접적인 소통을 하냐, 비효율적이고 시간만 질질 끌고, 독일인 처럼 어른이면 어른답게 자기 생각을 말할 줄 알아야지! 라는 것이나, 독일에서 사는 거 어때? 한국에 있을 때보다 행복하지??가 있었다. 당연하게 독일이 한국보다, 혹은 어느 타 아시아 국가나 미주 대륙보다도 훨씬 나은 곳이라는 우월함과 거만함을 잔뜩 품은 언변들을 들을 때면 뭐 독일 좋지, 근데 DB 연착 때문에 대중교통 만족도가 너무 낮고, 다른 EU나라에서는 잘만 쓰는 모바일 데이터가 독일만 들어오면 3G가 되는 건 좀 별로? 라고 대답해 주는데 그럼 되게 기분 나빠한다.

이런 것도 잘 품어주고 이 사람은 이런가 보네 하고 넘길 줄 알아야 정말 성숙한 건데, 나는 어릴 때부터 저렇게 남 깔보는 사람들에겐 왠지 반항심이 들어서 말이지.  

독일 생활 단점 5. 상대적인 꼼꼼함 

독일인이 꼼꼼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겪은 바 사실이라고도 느낀다. 내가 참 좋아하는 논문 지도 교수님 (독일인)은 은 그래서 꼼꼼하고 센스 있게 지도해 주시고, 사랑하는 우리 남편 (독일인)은 세심하게 나는 챙겨주기 때문에 이 기질이 큰 장점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회사에서 겪은 몇몇은 이 꼼꼼함을 상대적으로 쓰고 있다. 무슨 말인가 하니, 일을 요청해서 본인이 일을 할 때는 그다지 꼼꼼하게 안 하다가, 내가 무언가를 했을 때는 외과의사가 수술하는 마냥 요목조목 다 바꾸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확인 안 하고 미루는 부류보다야 훨씬 낫다! 진짜! 근데, 왜 너 할 일은 안하고 내 트집만 잡는 기분이 자꾸 드는 걸까? 둘 다 꼼꼼하거나, 둘 다 안 꼼꼼하거나, 똑부야 똑게야 멍부야 멍게야 하나만 해.

독일 생활 단점 6. 회의적인 태도  

독일에 오고 웃음이 많이 줄었다. 이곳에서는 항상 미소 짓고 있으면 실없는 사람, 자기 일을 진지하게 안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석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미소 가득이었던 나였는데, 지금은 전에 비하면 반도 안되게 웃는 것 같다. 불필요한 감정 노동이 없어져서 좋긴 한데, 한편 너무 불만 불평 가득한 사람이 되는 것 같다. 내가 그렇게 -덜 웃고 덜 행복해야 한다고- 느끼게 하는 독일인들은 중간 혹은 중하 정도의 기분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같다. 좋은 일이 생겨도, 꼭 안좋은 부분을 찾아내서 회의적으로 깐다던지, 나쁜 일이 있으면... 있는대로 불평한다. 우정을 쌓으려면 서로 누가 더 불행한지 불평배틀을 해야할 것 같은 느낌? 나는 좋은 일이 있으면 그대로 기뻐하고, 나쁜 일이 있으면 그대로 슬퍼하고, 감정을 다 소진하고 털어내는 사람인데 이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무슨 감정이는 중하 쯤으로 맞춰서 억제하려고 하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들과 교류하는 사람들도 그래야 한다는 태도를 느낀다.  

지금까지 생각나는 건 다 써본 것같다. 쓰고 나니 한국에서 덜 겪어본 일을 독일에서 겪는 특수한 경우 (3번, 4번, 5번)도 있고, 한국에서도 충분히 겪을 법한 일 (1번, 2번 -집단주의의 형태로-, 4번, 6번)인데 강력한 어나더 레벨로 겪은 것들도 섞여 있는 것 같다. 쓰면서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살 때 쌈닭 같다는 소리를 듣던 나였는데, 독일에서는 나 아직 병아리구나. 더 분발해서 더 강력하게 직설적으로 싸워서 내 권리를 지켜내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노를 연료 삼아 내일도 파이팅. 

기분 나쁠 땐 귀여운 유럽의 냥파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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