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내용을 내가 가장 관심 있는 '자기개발' 을 중심으로 개편하고 있다.
(1) 국내파 독학 영어공부 (2) 직장인 혼자 독일유학 준비 는 과거에 대한 기록과 지식 나눔이 될 수 있을 것이고,
(3) 독일어 공부 (4) 프로그래밍 & IT 산업 공부 (5) 독일 석사 생활 은 2021년 동안 실행하면서 공유할 이야기들.
독학으로 준비했다지만 사실 여러 사람들이 써놨던 블로그 포스팅이나 정보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내 경험들도 누군가에게 유의미한 정보가 될 수 있길 바란다.
#임대아파트 #단칸방 #반지하
9살까지는 작은 단칸방에서 4명이 살았고, 이후 12평 정도 되는 임대아파트에서 살았다. 27살 독립한 나의 소중한 보금자리는 보증금 500만원짜리 반지하방.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 반지하방이 어떻다고 누가 뭐래든, 나는 이곳에서 행복하고, 열심히 준비하여 내가 목표한 삶의 모습을 실행하고 있다.
어렸을 때? 아무 생각없었다. 태어났으니까 사는 느낌. 그저 아침엔 공교육제도에 따라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들었다. 끝나면 학원으로, 과외하러 흩어지는 친구들과 달리 나는 거의 하루 종일 놀이터에서 모르는 아이들과 놀거나 혼자 그네를 탔던 기억이 난다.
한창 흙수저 라는 말이 유행할때도 그다지 신경 안썼으면서 굳이 나 스스로를 흙수저라고 하는건, 세상이 부르는 '흙수저' 라는 정의에 모두 해당하기 때문이다. 위키피디아 수저계급론에 따르면, 똥수저였다가 흙수저가 되었다. (ㅋㅋㅋ) 몰랐다. 그렇게 내가 불리는 줄. 하지만 별다른 생각이나 감상은 없었다. 그렇구나, 사람들은 나를 흙수저라고 하는구나. 세상이 나를 흙수저라고 부르든, 흙포크라고 부르든, 나는 그저 나대로 존재할 뿐이다.
#입시
그 결과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본 반배치고사 성적은 360명 정도 되는 학생중 300등 정도였다. 알파벳도 제대로 못외우던 나는 당당하게 고등학교 문제집을 풀겠다고 자습 계획을 냈다. 담임선생님은 문제집 표지를 보자마자 치우고, 니 수준에 중학교 문제집도 제대로 못풀 것이라고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냈다. 그 무렵, 누군가 (아마도 외삼촌?) 가 대학교에 가면 지금보다 훨씬 잘 살 수 있다 고 했다. 미술을 하고 싶었지만 집에서 재료비를 감당할 형편이 안되었다. 그놈의 돈. 그거 버는 전공은 뭔가? 경영학과. 그 중에서 마케팅하고 광고산업으로 가면 이미지를 창작해 내는 일도 할 수 있다고 들었다. 돈도 벌고, 이미지도 만든다니,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였다.
그 때부터 하루 3시간씩 자며 기초를 따라잡으려고 했고, 그 다음번 시험에서 전교 59등을 했다. 그렇게 야간자율학습 3년 후, 인서울 4년제 대학교 경영학과 에 진학했다.
#경영학과 #해외생활
학비는 학자금대출과 저소득층 장학금이라는 감사한 제도 덕분에 해결했고, 생활비는 주말 하루 10시간씩 음식점에서 최저시급 4,200원 정도를 받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해결했다. 당시 유럽 배낭여행과 교환학생을 떠나는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막연히 나도 언젠가 해외에 가서 공부하고 살겠다는 로망을 가졌다.
#마케터
화려한 패션 업계에 매료되어, 패션업에서 마케터 로 첫 커리어를 쌓았다. 하지만 감성과 교감이 키워드인 업계에서, 감성 파괴형인 나는 좀체 사람들과 융화되기 쉽지 않았다. 장기적으로 커리어가 그려지지 않았고, 내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라든지 의미를 찾지 못한 채 퇴사를 했다.
#중고신입 #취준생 #워홀
이후 1년의 취업난을 겪으면서, 내가 살고자 하는 모습에 내 커리어를 맞추자고 생각했다. 언젠가 해외에 가서 살고 싶으니까, 해외에도 일자리가 많은 IT 업계에 관심이 생겼다. 알아보면 볼수록 더 마음이 갔다. 3년 정도 경력을 쌓고, 이직을 하거나 워홀 로 해외로 가서 지내보겠다고 생각했다. 3년동안 열심히 영어공부 하면, 1년 워홀 다녀올 실력을 기를 수 있겠지.
#IT산업 #재취업
IT 업계에서 일하게 된 건 정말 행운이었다. 논리와 숫자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기주장 뚜렷한 내 성격은 IT 업계에서는 강점이 되었다. 새로운 것을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성격 덕분에 업무에 필요한 IT 지식을 배우는 것도 재미있었다. IT 기술은 우리의 삶을 바꾸고, 기초 인프라를 구축하는 토대가 된다는 점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독일유학 #석사
워홀 을 가기로 스스로와 약속한 2020~2021년이 다가오면서, 영국, 아일랜드, 독일, 호주, 캐나다 등 후보 국가를 추려내고 준비하고 있었다. 남자친구는 석사 유학은 어떠냐며, 독일에선 유학생들도 학비가 면제되거나 저렴하다고 권유해주었다. 어차피 30대 후반~40대 초 정도 하려던 석사, 이번에 해버리자. 하고 석사 유학을 결정 했다. 그렇게 2020년 3월부터 준비를 시작했다. 아이엘츠, GMAT, Motivation letter, Essay 등 회사를 다니며 퇴근 후 / 주말 시간을 쪼개서 준비했고, 2021년 3월 준비 1년 만에 Digital transformation 관련 전공 석사에 합격했다.
곧 미지의 독일행을 준비 하며, 블로그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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