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가 시작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불평하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해봐야 걱정만 끼칠 것, 친구들은 공감할 수 없을 것이고, 현지 친구들에게 말하면 로컬인 본인들 욕을 앞에서 시전 하는 것이다 보니 오도 가도 못하고 꿍, 답답하게 가슴속에 눌러놓으려고 하지만, 어딘가 감정을 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푸념 글을 쓴다.
나는 내가 독일에 올 때, 해외에 대한 환상이 없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생 때도 유럽에 대한 환상이 없었고, 세계사 책을 몇 권 읽고 나서는 되려 부정적인 이미지 까지 갖고 있었다. 인종차별 문제도, 우리나라도 그 부분에서 딱히 깨어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유럽이 더 잘났다, 못났다 하는 의견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나는 어디쯤? 문화 적응에는 시간이 걸린다지만, 나는 허니문도 없었는데 억울하게. )
그나마 기대했던 건 (1) 개인주의 사회인 만큼 쓸데없는 참견 (a.k.a 오지랖) 하는 사람 없고 , (2) 기본적으로 개인을 존중할 것, (3) 도시에 살기 때문에 사람들이 좀 더 타 문화에 오픈마인드일 것, 이렇게 3가지였다. 이중 기대에 부합하는 건 첫 번째뿐인 것 같다. 그거라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두 번째와 세 번째 기대를 저버리는 일은 보통 작은 크기로 잔잔하고 꾸준하고 짜증 나게 일어난다.
가본적도 없으면서 혹은 고작 1주일 둘러본게 다면서, 한국과 중국, 일본은 싸잡아 "아시아는 어쩌고저쩌고" 라는 얘기를 늘어놓거나, 일본은 어떻더라 (진짜 지겹다. 일본에 대한 환상은 어찌나 짙은지.) 하는 얘기를 한다. 가끔 짜증 날 정도로 일본 얘기를 나한테 하는 사람한테는 대놓고 "아 맞다, 그렇지. 나도 프랑스 문화 너무 좋아해! 음식도 너무 훌륭하고!(=응 나도 독일 관심 1도 없다. 프랑스가 더 멋져, 그렇지?)" 하고 꼽을 주긴 한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북인지 남인지 묻는 질문은 이제 당황스럽지도 않다.
우리 과에는 중국인이 1명도 없고, 과 정원이 적음에도, 한 학기가 끝나가는 와중에 나를 중국에서 왔다고 하는 학생도 있었다. (몰랐던 내 국적?) 팀과제를 하는데 열심히 자료 조사를 해갔더니, 조사가 미흡했던 팀원이 민망했는지 하는 말, "아시아권에서 자료 찾기가 더 쉬운가 봐." 그냥 자료조사 잘해줬다, 고맙다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왜 아시아를 들먹거리는지? 인종차별이 별게 없다, 생긴 거 다르다고 길가다 위협받는 것뿐만이 인종차별이 아니다. 개인이 들인 노력과 시간을 인정하지 않고 그 사람의 인종이나 출신만으로 판단해버리는 게 인종차별이라는 거, 그녀를 모르는 건지 알고 한 건지. 어이없어서 상대도 안한채 팀 미팅은 끝이 났다.
한 번은 독일인 무리와 식당에 갔는데, 자연스럽게 다들 독일어로 대화를 했다. 솔직히 한국사람들 무리에 외국인 1~2명 있어도 그럴 것 같아서 별 신경도 안 썼다. 그러다 한 명이 나를 의식하고 "아! 영어로 말하자!" 하고 제안하니 한 명이 나를 보며 "너 독일어 늘려야 하니까 우리가 독일어를 할게. 듣기 연습이 될 거야"라는 쌉소리를 하는 게 아닌가. 우선 나는 너한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고 (묻지 않은 조언은 참견이라는 게 내가 지키는 가치관 중 하나다.), 그룹 내에서 타인의 부족한 점은 공개적으로 들춰 이야기하는 건 무례한 행동이며, 같은 논리로 나는 내 영어가 네 영어보다 훨씬 나으니 너의 영어실력 향상을 위해서 영어를 하자고 할 수 있다.라는 타당한 이유가 한순간에 떠올랐다. 그래서 조용히 웃으며 "그래 ^^!!"라고 하고 그 친구가 독일어로 한마디 하자마자 "Oh, that is very enough. Let's switch to English. (오, 연습 완전 많이 함, 영어로 바꾸자.)"라고 말해줬다. 응, 어차피 설명해줘도 못 알아듣고 말만 길어질 테니 무례한 행동하는 사람 한 번 느껴보라고.
독일에 온지 반년 조금 지난 나에게, 만나면 독일어 안 배우냐고 채찍질하는 사람들. 본인들 영어가 부족하니 불편해서 자꾸 찔러대는데, 안 하는 게 아니고 언어 공부라서 시간이 걸릴 뿐이다. 석사 공부를 하면서 독일어를 공부해서 다음 달에 초급과정 끝내고, 중급 올라간다. 진짜 본인들이 아시아 언어 하나라도 배우려고 시도해봤으면 저런 말 못 한다. 독일어와 영어는 뿌리도 같고, 겹치는 단어도 있으니, 본인 입장에선 내가 영어를 하는 게 너무 당연하게 느껴져서 말도 안 되는 꼽사리를 준다. 특히 나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면서, 해외생활 한 번도 해본 적 없이, 혼자 영어를 연습해서, 석사를 하고, 독일어까지 같이 공부하고 있는 나에게 늘 기특하다 대견하다 스스로 칭찬해주는데 너네들이 뭐라고 꼽을 주는지? 그럴 땐 그냥 어금니 꽉 쥐고 "I'm doing (and later, I will beat you in German.)"이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한국 무시하는 발언할 때, 예를 들면 내가 한국어 언어 교환을 하고 있다니까 "세상에 누가 한국어 배우고 싶어하냐고, 일본어 배우고 싶어 하지?" 라고 하는 독일인이 있었는데, 차분하게 "요즘 유럽 젊은 층 사이에서 한류 인기 많다, 오징어 게임 보면 모르냐." 하고 대답하니 "아닌데? 내 사촌동생 20살인데 일본 애니메이션 보는데?" 이런 건 진짜... 악의 담지 않고 순수하게 '무례하고 무식하다'라고 밖에 못하겠다. 우리나라, 부족한 부분 많고 내 모국이어도 깔건 까야겠다는 점들 많지만, 그렇다고 너네가 그렇게 하대하고 무시할만한 나라도 아닌데. 모르니까 저렇게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무례한 거다.
이게, 길거리에서 무작위로 만난 사람들도 아니고, 독일이라는 선진국 대도시에서, 학석사를 하고 있거나 마친,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라는게 나를 더 지치고 실망하게 한다. 오늘도, 지금도.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내가 목표한 것이 있고, 그걸 이루기위해 왔고, 오만한 너희는 죽었다 깨어도 모를 멋진 인생을 살고 있으니 입 다물고 꺼지라고 정신승리를 해본다.
'왕십리홍'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0202 독일 시험기간 드디어 끝 & 화이자 3차 부스터샷 접종 후기 (0) | 2022.02.02 |
---|---|
20220123 8개월차 유학생, 인종차별에 대한 단상 (0) | 2022.01.24 |
20220109 독일 석사생 시험준비 근황 (0) | 2022.01.09 |
20220101 한국 갈 수있을까? 독일 코로나 상황 (0) | 2022.01.02 |
20211229 독일 생활 6개월 (0) | 2021.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