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유입 키워드 중에 '독일 유학 나이'가 꾸준히 있는데, 이것에 대해서 따로 글을 써본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사실 특별할 게 없는 이야기지만, 혹시라도 이 생각이 또 누군가에게는 흥미로운 의견이 될 수 있으니까 한 번 써보기로 함.
30대 초반 (극초반 x 초반 o)에 퇴사하고 독일에서 석사하는 이야기.
나는 2021년에 한국 나이로도/만 나이로도 빼박 30대가 되어서 독일 석사를 시작했다. 사실 그 전에는 아예 나이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우선 내 성격이, 위로든 아래로든 나이를 그다지 신경쓰는 편도 아니고,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래도 석사를 사회생활을 좀 하고 나서 30~40대쯤 하는 게 흔하니까 석사를 준비할 때 나이에 대한 생각이 정말로!! 전혀!! 없었다.
이에 대해서 깨닫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석사를 시작하고 나서였다. 독일 석사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이제 다 아시겠지만, 독일은 이전에 디플롬 이라고 하여 학/석사 5년 통합 과정이 일반적이었던 것이 나누어지게 되었다. 공식적으로는 나뉜 학위와 과정이 되었지만, 아직도 독일에서는 그때의 정서가 남아있어선지 학사를 했다면 석사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며, 학사만 취득하는 건 공부를 다 끝내지 않고 중간에 그만둔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고 한다. 여태까지 독일에서 학사는 있지만 석사는 없는 친구를 딱 1명 보았는데, 이 친구는 적성을 찾아서 학사만 3번 이상을 도전한 터라 학사에 10년 이상 시간을 쓴 상태였다. 그러던 중 워킹스튜던트 했던 회사에서 정규직 채용을 하게 되어서 석사를 하지 않고 그냥 취업을 했는데, 최근 파트타임 석사를 알아본다고 들었다. 그만큼 독일에선 학사가 있다면 석사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생각하는 학사 후 석사를 하는데에 대한 당위성과 차이점이 있다.
왜 이 부분이 독일 유학 석사 나이와 연계되는 이야기인가 하면, 위와 같은 이유로 학사 후 석사를 바로 시작하는 사람이 많고, 평균 학생 연령대가 20대 중반에 형성된다는 것이다. TUM 같은 규모가 큰 우니에서는 표본이 더 많아 다양하겠지만, 30명 규모인 우리 프로그램에서는 조금 어리다 싶은 친구는 22세, 평균은 23~24세, 30대 이상은 나 포함 단 2명이었다.
아무리 나이 묻지 않고 친구가 되는 문화라고 하지만, 5살 이상 차이는 곧 관심사의 차이와 직결되므로 이 차이를 무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23세 정도 사회 경험을 막 시작하는 동기들과, 30대의 나 사이에는 관심사의 차이가 생기고, 이는 곧 대화의 어려움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이들 중 대다수는 아직 부모님 댁에서 살며 남자친구/여자친구와 동거 (move in)을 계획하는 단계에 있는데, 나는 이제 웨딩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단계에 있다. 취업이나 학업 관련 이야기를 할 때도 그 토픽을 바라보는 관점에 축적된 사회 경험에 따른 관점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과 어울리고 교류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30대라서 친구 못 만드냐고 하신다면, 나는 원래 인간관계를 좁게 유지하는 편이라, 서너 명의 친구를 사귀게 된 것으로 만족한다. 동기 중 가장 어린 친구, 평균 연령대에 있는 20대 중반 2명 정도 친구들은 개인적으로 연락하고 만나기도 하는 사이가 되었다.
반면, 워킹스튜던트를 하는 지금은 회사에서의 네트워킹에 작은 애로사항이 있다. 나이가 비슷한 직원들은 이제 Senior 레벨이 되어가고, 점심 식사를 해도 업무 얘기가 종종 나오는데, 나는 다다음 학기 논문을 걱정하고, 독일 회사에 적응하는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연령대는 비슷하지만, 이들은 내가 일을 할 때 석사를 했고 취업하여 시니어가 되어 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삶의 다른 단계와 지점에 있다 보니 관심사가 또 엇갈리게 된다.
결론적으로,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조금 애매한 포지션이 되어 인간관계를 쌓는데 약간의 애로사항이 있다는게 30대에 독일 석사를 시작한 단점이라고 하겠다. 솔직히 그 외에는 나한테 '30대라서' 느끼는 단점은 없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비교해서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나, 라는 가끔 오는 현타감은 연령과 무관하게 생기는 단점인 것 같아서 제외. 사실 이것도 거의 반년에 한 번밖에 발생하지 않는 레어 한 이벤트.
아, 현실적인 단점으로는 만 30세 이상은 독일에서 공보험 가입하기가 어렵다, 나이 제한으로 학생할인을 못 받는다 (※학생 할인은 만 26세까지로 제한하는 곳들이 있다.)라는 점들이 있다만. 사보험으로도 여태까지 커버 못 받은 진료가 한 건도 없고, 체류허가증 받는데 문제가 없었으며, 학생 할인은 조금 아쉽지만 단점으로 느낄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는 작년이 독일 석사를 하기에 최적의 시점이었다고 본다. 지금도 그 생각에 전혀 변함이 없다. 오래전부터 해외를 가서 살겠다는 계획은 워낙 확고했는데, 30대 초반인 현재가 최적이라고 생각한다.
1. n개의 잡마켓에 배수진을 칠 수 있다; 한국에서 학사/실무 경험을 쌓고 나왔기 때문에, 독일 석사 끝나고 살기 싫으면 학위 따서 한국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했고 여전히 유효한 생각이다. 독일 석사 학위와 독일어 공부를 한다면 독일 잡마켓에서 구직을 하는게 가능하다. 혹은 가능성은 미지수지만 제3국에서도 도전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독일 석사는 한국에서/다른 나라에서 인정 못받는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는데, 별로 신경이 안쓰인다. '석사 학위' 네임밸류가 인정을 못받는다고 해도, 영어/독일어를 익히면서 해외에서 홀로 생활한 경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까, 그 경험을 활용한 강점은 스토리텔링하면 된다고 이 선택이 마이너스가 될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2.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역량; 첫 1년은 한국에서 회사 다니며 모은 저축금으로 생활했고, 지금부터 졸업까지 1년은 워킹스튜던트 하며 버는 소득으로 생활하는 중이다. 워킹스튜던트 잡을 구할 때도 한국에서 실무를 했던 이력이 도움이 되었다고 믿는다. 엄마께서 사랑을 담아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보태주는 금액은, 엄마께는 비밀인데, 한국 계좌에 모셔둠. 이 또한 한국에서 20대에 열심히 일한 덕분에 갖게된 30대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3. 멘탈 맷집; 말해 뭐해, 이 또한 20대에 한국 사회생활을 거친 30대가 가질 수 있는 소프트 스킬 중 굉장한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영업직무였기 때문에, 진상 고객, 윗선에서의 실적 압박으로 다져진 멘탈 맷집은 해외생활을 헤쳐나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30대 한국인이 모두 같은 조건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초/중/후반 인지, 가족이 있는지, 자녀가 있는지, 전공, 목표, 본인 성격에 따라 30대 독일 석사 유학을 결정하는데에는 고려할 게 참 많다. 그렇지만 순전히 '30대' 라고만 필터링을 해봤을 때, 30대 초 퇴사하고 석사를 시작한 사람으로서 그 선택에 후회는 전혀 없음! 만약 나중에 이 선택의 후회가 생긴다고 해도 그 후회마저도 헤쳐나갈 역량이 독일에서의 경험들을 통해 길러지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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