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많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결과만 놓고 보면 석사 논문 제출 후 취업 준비 중이라는 짧디 짧은 문구로 정리가 되어버린다. 숨차게 달리고 최선을 다했는데, 이상하게 내 이력서에 특별하게 추가된 것도 남은 것도 없는 허탈한 기분. 석사 과정이라는 하나의 긴 터널을 지나면 그 끝엔 빛이 쨍하게 빛나는 출구가 나올 줄 알았는데, 취업준비라는 긴 터널에 다시 진입을 해버렸다. 그리고 2년이라는 대략적인 터널의 길이가 주어졌던 석사과정과 다르게 이번은 얼마나 터널이 길지, 출구가 여러 개인지 하나일지 불확실성 투성이이다.
2023년 6월~8월: 석사 논문 마무리
마지막으로 글을 올렸던게 6월 초였다. 5월 말 쯤 사내에서 꽤 좋은 정규직 기회가 있었는데, 필요한 스킬 핏도 안 맞고 무엇보다 논문을 쓰면서 정규직 일을 시작할 수 없어서 어찌어찌 놓쳤다. 이것까지 2023년 상반기동안 3번의 정규직 기회를 논문 쓰는 어정쩡한 기간 때문에 놓쳐야 했다. 마음의 상심이 컸지만 논문을 끝내기 전에는 언제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확답은 주기도 어렵고, 체류허가는 독일어 시험 때문에 홀드 되어 있다 보니 일단 논문을 마무리를 하고 취업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월에는 시간의 50%는 워킹스튜던트, 그리고 50%는 논문을 쓰는데 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3월에 신청했던 체류허가 심사에 괴테 독일어 시험을 보고 결과를 가져오라는 요청을 받았다. 내 경우 필요하지 않음을 피력했지만, 베암터는 가져오길 요청했고, 체류허가 관련해선 베암터가 철저한 갑이기 때문에 나는 갑자기 독일어 시험공부를 급하게 일정에 끼워 넣어야 했다.
논문의 내용은 7월에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오탈자, 인용, 형식을 검수하는데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특히, 형식때문에 내용의 1/3을 잘라내야 하는 상황이 생겨서 수정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처음에 대학교에서 있는 기존 양식을 다운로드하여 쓰기 시작했는데, 그건 줄간격이 1.0이었고, 나의 논문 지도 교수님은 줄간격을 2.0으로 맞추시는 분이었던 것이다... 줄간격을 바꾸니 내용이 너무 많아져서 학교 규정상 허용된 페이지 수의 배가 되었다... 그래서 내용을 전체 검토하고, 잘라내고, 이어 붙이는 작업을 8월 중순까지 해야 했다.
그렇게 8월 중하순이 되니 아무리 주어진 형식에는 맞도록 석사논문이 만들어졌다. 6월에 독일어 시험을 통과하고, 7월부터는 그 시간을 일자리 지원하는 것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워킹스튜던트를 하는 회사 내에서도 매니저들에게 커피챗을 신청하며 취업 기회를 찾고 있었다. 문제는 7월부터 여름휴가 시즌에 들어서면서 잡포탈에 올라오는 공고가 현저히 줄었고, 그건 사내상황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연초~중순에는 자리가 있었지만 내 상황이 여의치 않더니, 이제는 상황이 되려니 자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마음이 엄청 초조해졌다. 휴가 기간이 끝나면 나아질거야, 휴가시즌이라 그럴 거야 하고 나를 달래려고 했지만, 매일처럼 받는 불합격 통보/새로운 공고가 없는 잡포탈 메인화면은 나를 점점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2023년 9월: 워킹스튜던트 계약 연장 & 취업준비
다행히 논문 등록을 늦게 한 덕에 1학기 더 연장할 수 있었고, 워킹스튜던트 계약도 1학기 연장할 수 있었다. 적어도 파트타이머로 돈 벌고, 기업 내에서 취업준비를 할 수 있음이 감사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스트레스 받고 있었을 것 같다. 원래의 목표는 9월까지 취업을 하고, 논문을 제출하고, 11월부터 정규직을 하는 것이었는데, 9월 중순이 되어도 지원할 자리는 부족했고, 인터뷰는 7~8월 사이 2건은 제외하고 9월 동안 한 건도 잡히지 않았다. 7~9월 사이 50곳을 지원했으니, 지원은 가리지 않고 -신입, 경력, 풀타임, 파트타임- 했는데, 면접이 한 건도 안잡히는 것이다.
한숨이 늘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독일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독일에서 독일어 없이 취업을 한다는 건 불가능은 아니다만 쉬운 일도 아니니까. 독일에서 일하려면 독일어를 못해서 나쁠게 전혀 없으니까, 뭐라도 하면서 취업준비를 병행하자는 생각에 독일어 B1 회화를 시작했다.
2023년 10월: 석사 논문 제출 & 취업준비
그렇게 9월 말이 되고, 10월 초 공휴일 덕분에 한국에서 추석처럼 5일 정도 휴일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연휴 앞뒤로 4건의 1차 인터뷰가 잡혔다. 연휴를 전혀 쉬지 못하고, 시험공부모드로 면접들을 준비했다. 하나는 되겠지, 4개 중 하나는 2차까지 갈 거야!라는 간절했던 마음과 달리, 어느 곳에서도 2차 인터뷰에 초청받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모든 포지션이 경력직이었는데, 그들이 보았을 때 내 경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애초에 100% 경력을 인정받겠다는 욕심조차 가지지 않았는데, 1-3년차 경력직을 뽑는 포지션에선 내 경력 (인턴/워킹스튜던트 제외하고 정규직만 6년)을 전혀 인정할 수 없다며 fresh gradurate 레벨로 연봉을 낮춰서 조정해야 한다고 했다. 근데 그게 HR에서 안 해줄 가능성이 높다며. 사실 이건 핑계고, 직접적인 해당 직무 경험이 없는 게 가장 큰 요인이었던 것 같다. 내가 이전에 했던 일은 세일즈/마케팅이고, 해당 직무는 마케팅 오퍼레이션 Marketing operations 으로 전략기획 쪽 Strategy 업무 성향이 강하긴 했다. 그렇다고 아예 안 해본 일도 아니며, 나는 기획을 포괄하는 경영학 학석사가 있는데, 경력을 전혀 인정해 줄 수 없다는 건 꽤 놀라웠다.
나에겐 두가지 방향이 있었다. (1) 기존 직종/직무대로 경력직 지원 (2) 희망 직종/직무대로 신입-경력 가리지 않고 지원.
(1)은 내가 일했던 IT 산업이 독일에서 취약 산업이라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었다. 이곳 독일은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곳이다. 독일에서도 IT 산업 대부분은 미국계 기업이 들어와서 점유하고 있었고, 독일 입장에서 외국계인 미국회사들은 로컬마켓을 공략할 현지 인력을 채용하고 싶어 한다. 대부분 독일에서 학사이상 교육을 받은 사람이면 영어도 구사하니 본사와 커뮤니케이션도 가능하다. 그들 입장에서 나는 매력적인 지원자가 아닌 것이다.(2)는 워킹스튜던트를 했던 산업/직무인데, 경력직/공학 학위 수여자가 주류인 곳이다. 전체 TO중, 경영학 같은 사회과학 학위 소지자를 뽑는 자리는 전체 TO 중 5% 정도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Finance, HR 이 대부분인데, 그건 나의 Specialization이 아니었다. 그중 영어로 일하고, 지금 사는 도시 근처로 범위를 좁히면 지원한 자리가 한 달에 한두 개 나올까 말까 했다. 워낙 지원할 자리가 적으니 신입/경력 가리지 않고 지원했는데, 애초에 신입 TO는 전체 중 10% 정도밖에 안 되어서 경력직에서 가능성 재지 않고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T자형 인재 (제너럴리스트+스페셜리스트)가 대세인 한국과 다르게, 독일에선 철저히 !!스페셜리스트!! 를 고집한다고 느꼈다. 아무래도 해고가 어렵다보니, 철저히 이 직무에 대한 전문성과 경력을 입증하고 채용하고 싶어 한다고 느꼈다. 소프트 스킬/유사 경험만 가진 지원자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면 대학 갈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처럼, 마치 내 인생 전체를 이 직종만을 고집해서 살아온게 아니라면 고려대상조차 될 수 없다고 느꼈다. 직종/직무 가리지 않고 한국계 기업을 지원하는 것도 생각해봤는데, 대부분의 한국계 회사가 위치한 프랑크푸르트-뒤셀도르프 쪽은 내가 사는 곳에서 통근이 불가능한 (편도 5시간) 거리였다. 혼자라면 도시 간 이동이 자유롭지만, 결혼해서 이곳에 정착한 나에겐 혼자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는 건 가뜩이나 부담되는 렌트를 2배로 늘리고 가족과 멀어지는 결정이었다. 애초에 한국인 지원자가 넘치는 한국계 기업에서 내가 만족스러운 기회를 얻게 될 가능성도 미지수이고. 이렇게 생각이 미치니 오도가도 못하게 어딘가 아주 꽉 끼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고개조차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꽉. 나는 10월 초부터 입맛을 완전히 잃어버려서 콜라와 커피 빼곤 뭐든 먹거나 마시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논문을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논문의 공식적 제출 기한은 아직 만 2달정도 남아있었다. 혹시 학생 신분을 길게 유지하는 게 나을지 모르니, 취업이 결정되면 논문도 제출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더 이상 뭐든 질질 끌고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게 지치고 힘들었다. 뭐라도 끝을 내고, 결과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 교수님께 논문 제출하고 싶다고 메일을 드리고, 온라인으로 업로드하고, 우편으로 학교로 하드카피 보내버렸다. 충동적으로 논문을 제출하는 게 흔한건가? 모르겠지만, 우편으로 논문을 보낸 날 잠을 오랜만에 아주 잘 잤다. 최종 성적을 받기까지 어차피 1달 반~2달 정도가 걸리는데, 그날이 벌써 기대되면서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잠시 한국에도 다녀오기로 했다. 취업을 해야하는 이 시기에 독일에서 취업준비를 해야지 한국에 가고 싶어 하는 내가 나약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다녀오기로 결정을 하고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한국은 가을이 완연할 텐데, 아침에 살짝 시린 가을 공기를 마시는 것, 내가 너무 사랑하는 도시 서울을 가는 게 기대되고 행복해졌다. 취업준비는 서울에서도 온라인에서 지원하고 그럼 되겠지.
이렇게 2023년 6월부터 10월까지 치열했던 기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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